"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업화 기틀 다진 선구자를 기리다"
화성시립남양도서관에서 제막식...과학기술인 예우 문화 확산 계기 마련

공적비 제막식 단체사진ⓒ(사)김재관 박사 기념관(www.zaequankim.org)
한국 산업화의 숨은 설계자로 불리는 고(故) 김재관(1933~2017)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대원장의 공적비가 19일 경기도 화성시립남양도서관에서 제막됐다. 이번 제막식은 정희준 송호·지학장학재단 이사장이 공적비 건립 사업을 추진했으며, 정구원 화성시 제1부시장, 김명자 KAIST 이사장,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유장렬 과학기술유공자지원센터장 등 과학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공적비 제막식 단체사진ⓒ(사)김재관 박사 기념관(www.zaequankim.org)
김명자 KAIST 이사장은 "한국이 전쟁 폐허를 딛고 경제발전을 이룬 배경에는 과학기술과 산업기술이 있었고, 고인처럼 공적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애국심을 갖고 헌신했던 과학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며 "현재까지 기적을 이뤄낸 만큼 앞으로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제2의 김재관, 제3의 김재관이 나와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표준은 집을 지을 때 땅을 다지는 일로 중요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일"이라며 "고인이 국가 표준 확립을 헌법에 담는 데 역할을 했는데, 이같은 업적은 눈에 띄지 않지만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표준체계와 고인이 닮아 안타깝다"며 소감을 전했다. 실제로 김 박사의 공적은 사후에 주로 알려졌을 정도로 그는 오직 국가만을 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박사의 아들인 김원준 삼성글로벌리서치 대표는 "부친은 항상 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했던 분"이라며 "이번 공적비 건립은 공적을 기리는 것 이상으로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힘써준 선구적인 과학자들을 위한 공적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철강·자동차·표준화, 산업화 3대 축 설계
김재관 박사는 1964년 독일 유학 중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 논문을 직접 전달한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 한 유학생의 용기 있는 제안은 훗날 포항종합제철소 건설과 한국 철강산업의 토대가 됐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서독 뮌헨공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김 박사는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귀국해 대한민국 1호 유치과학자가 됐다. 유치과학자는 정부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창립 당시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에서 불러들인 우수 과학자들을 일컫는다.
귀국 후 김 박사는 한국 산업화의 핵심 기반을 차례로 설계했다. 전 세계가 비웃던 철강산업이 한국의 미래라고 확신하며 포항종합제철소 설계에 참여했고,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설득해 자동차 산업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한국형 고유 자동차 모델 '포니'의 기반이 된 '표준형 차체 개발사업 기획서'를 작성하며 국산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또한 선진국으로 발전하려면 국가 표준 체계 확립이 필수적이라고 내다보고, 헌법에 국가 표준 확립 조항을 넣는 데 기여했다.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을 거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대원장으로 근무하며 미국과 일본에 종속될 수 있었던 표준 체계를 자립화했다.

김명자 우정 김재관 기념사업회 회장(KAIST 이사장)ⓒ(사)김재관 박사 기념관(www.zaequankim.org)
과학기술인 예우 문화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길...
김 박사는 2023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된 후 2024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과학기술인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례는 건국 이래 단 8명뿐으로, 이후 고향 지역 유지들과 김명자 KAIST 이사장 등이 중심이 되어 공적비까지 건립했다.
이우일 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유공자 지정부터 현충원 안장, 공적비 제막은 과학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며 "이번 제막식을 계기로 과학기술인들을 예우하는 문화가 확대됐으면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