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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기술유공자 인터뷰_이현순 두산그룹 고문

작성일
2022-04-28
조회수
28,499

자동차 엔진 기술의 개척자

국가 핵심 경쟁력의 초석을 다지다

 

자동차 엔진 개발의 세계적 권위자

국내 최초 독자기술로 엔진 개발, 국가 경쟁력 확보

국산 자동차 품질의 경쟁력 제고 및 관련 사업의 활성화 방안 구축

이현순1.jpg 이미지입니다.

과학기술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분야다. 특히 기계공학의 발전은 사회와 산업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전파하며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다.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꾀하며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국민이 체감하는 사회적 가치를 만든다. 이현순 두산그룹 고문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 발전을 견인한 인물이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우뚝 서게 만든 1등 공신인 이현순 고문. 엔진 국산화를 최초로 이끌며 오늘날 우리나라가 자동차 생산 대국이 되는 토대를 마련했다. 미약했던 우리나라 엔진 개발 기술력을 단숨에 100년 역사를 가진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기술 선진국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끌었다.

이현순 고문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건 1984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 GM에서 연구원 생활을 이어가다 국내로 귀국했다. 미국에서 계속 연구 활동을 한다면 더욱 많은 기회가 주어졌겠지만, 조국의 산업 발전을 간절히 꿈꿨기에 어려운 길에 뛰어들었다. 당시 생산량이 10만 대도 못 미치던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후 자동차의 심장으로 불리는 엔진 개발에 매진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엔진 개발에 성공하며 1.5L알파, 2L세타, 3L람다, 5L타우 엔진 등을 오롯이 독자기술로 완성해 선보였다. 수많은 반대와 부정적인 시선, 고난을 딛고 단기간에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핵심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자동차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장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국내 유수의 부품 협력업체들과 공동개발을 주도하며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의 매출 신장도 함께 이끌었다.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국내 경기 활성화, 고용 창출 증대라는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를 조성하며 자동차 산업을 국가의 핵심 경쟁력으로 육성하는 데 기여했다.

“기술자들을 한발 앞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기술 실용화를 최대한 앞당겨서 시장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이 기술자의 역할이자 책임이지요. 국민이 더욱 편리하게 생활하고, 사회적으로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이현순 고문은 혜안을 발휘하며 남들보다 빠르게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30년 전부터 매연기관의 한계를 내다보고 친환경 기술 개발에 나선 것. 수소자동차를 개발하는가 하면, 세계최초로 환경기술 연구소 설립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계 없는 열정과 헌신으로 우리나라를 과학강국으로 거듭나는 기틀을 마련해온 이현순 고문. ‘사람이 곧 국가적 자산’이라는 신념 아래 후배 연구원이 역량을 키우고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에도 힘썼다. 개인의 영달보다는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나선 그의 행보는 우리나라가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혁신적 초석이 되어주었다.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신 계기가 있었을까요?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6·25 전쟁 끝난 후 태어난 터라 나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서 가지고 놀곤 했는데, 장난감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놀이를 유독 좋아했습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깎은 후, 바퀴 4개를 달아 자동차를 만들고 언덕 위에서 굴리며 놀았습니다. 아버지가 공학자여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이때부터 자동차와 비행기에 관심과 흥미가 생기면서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막연히 우리 삶에 기계가 많은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시고 뉴욕에서 수학하셨습니다. 당시 한국의 기계공학 분야의 위치는 어느 정도였으며, 유학을 통해 느끼신 점은 무엇인가요?

대학 시절 국내 교육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시험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실무를 겪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지요. 대학 졸업 후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생도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원조해준 시험 장비를 다루면서 비행기 엔진을 접하게 되었고 더욱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복무가 끝난 후 바로 미국 유학을 떠났는데, 우리나라 수준과 큰 차이를 느꼈어요. 공군사관학교 시절 익힌 경험을 살려 앞선 수준의 교육을 따라가려 노력했습니다.

 

많은 분야 중 자동차 엔진 기술 개발에 집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학 시절 주로 비행기 엔진 관련 공부와 연구를 많이 했어요. 졸업이 가까워지던 시점에 자동차 엔진에 더욱 관심이 가더라고요. 비행기보다 자동차가 우리 일상 속에서 쓰임새가 많았기에 실생활과 밀접한 기술을 개발하고 싶었습니다. 또 비행기는 방산산업이기에 미국에서 외국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엔 어려웠다고 판단했습니다.

 

1991년 국내 최초의 엔진인 알파엔진 개발에 성공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돌아와 현대자동차에서 첫 번째 엔진을 개발할 때는 어려움이 정말 많았습니다. 당시 동료나 상사 등 주변 사람들 99%가 반대했으니까요. 기술 제휴를 해주던 일본 미쓰비시에서도 독자기술 개발에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독일 출장 간 사이에 저를 해임한 적도 있었어요. 사무실이 없어져서 6개월 동안 복도에 책상을 놓고 근무하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엔진 국산화는 ‘대한민국이 건너야 할 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드시 기술 자립을 해야 한다는 굳건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자동차 업계 박사 학위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 저였기에 제가 꼭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임했습니다. 알파엔진은 당시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톱 클래스 수준이었기에 미국, 독일, 일본 등 해외에 수출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나라로부터 ‘기술 지도를 받던’ 대한민국이 ‘기술 지도를 해주는’ 나라가 된 셈이지요.

 

알파엔진을 시작으로 다수의 엔진 개발에 성공하셨습니다.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을 이어갈 때 어떤 관점과 방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나요?

모든 연구 과정을 ‘치밀하고, 정확하고, 투명하게’ 진행했습니다. 자동차는 20년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내구성이 견고해야 하지요. 그 때문에 엔진을 이루는 요소요소를 허투루 다루면 안 됩니다. 또한 엔진은 미크론 단위로 가공될 만큼 굉장히 정밀한 제품입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소음이 발생하거나 마모, 수명 단축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연구실에서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지요. 데이터가 완벽하게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시험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설계와 소재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개발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과 제품을 시장에 선보인 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거든요. 수백 배의 손실을 막기 위해 하나하나의 과정에 공을 들였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산업 분야인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과학기술자로서 느끼시는 보람과 자부심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젊고 훌륭한 엔지니어를 키워내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항상 가슴 깊이 품었던 0순위 임무는 저보다 뛰어난 후배를 양성하는 일이었어요. 후배들에게 역량을 펼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후배들과 강팀을 만들 수 있었음에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평생 한 분야에 매진하며 도전을 거듭하셨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이어오신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세 가지의 약속이 저를 열심히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대한민국 엔진 기술 자립’이라는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와의 약속이었습니다. 대학 교육을 받고 유학을 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쌓을 때까지 국가 덕을 많이 봤지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는 신념으로 나아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료들과의 약속입니다. 동료들이 저를 믿고 따라와 주었기에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계속 정진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전기자동차 활성화와 자율주행의 도입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국내외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앞으로 친환경과 IT융합기술 트렌드는 가속화될 것입니다. 이에 발맞춰 새로운 기술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매연기관이 한계에 부딪히고 서서히 산업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판단하고 1994년에 수소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30년 후를 미리 내다보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이지요.

기술자들을 앞을 내다보고 시장의 변화를 선도해나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기술을 개발해서 선반에 얹어놓아야 하지요. 필요할 때 바로바로 제품화해서 시장에 내놓는 것이 곧 경쟁력이니까요. 세계 일류가 되려면 더 빨리, 좋은 기술력을 선점해야 합니다. 기술 실용화를 최대한 앞당겨서 사회를 이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기술자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현주소를 짚어주시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조언 부탁드립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이 한 분야에만 국한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융복합기술을 통해 더욱 혁신적이고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고 있지요. 자동차 산업 또한 기계공학과 빅데이터, AI기술 등을 접목한 제품이 미래 자동차 산업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 교육 시스템에는 여전히 학문적 칸막이가 존재합니다. 융복합기술 개발에 있어서 순발력과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자들이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해보입니다.

 

자동차 엔진 개발의 세계적 권위자로 평가받고 계십니다. 후대에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훌륭한 엔지니어도 좋지만 후진 양성을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현재 10여 년째 이공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 특강을 진행하고 있어요. 엔지니어의 삶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일깨우며 자신감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후배들이 엔지니어로서 나아가는 데 작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으신 목표와 꿈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이 굉장히 발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입니다. 국민들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공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무척 영광입니다. 자동차 엔진은 결코 혼자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저 혼자만의 결과물이라기보다 동료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입니다.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 의기투합한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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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순 고문은 가솔린과 디젤을 포함한 차량용 엔진과 변속기 자체 개발을 선도하고 미래 기술 트렌드를 앞장서서 제시한 한국 자동차공학 최고기술책임자다. 원천기술로 자동차 엔진개발 등 학술의 실증적 구현을 통해 학문발전에 직·간접으로 기여했다.

1973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내공을 쌓은 후 국내 최초 독자 엔진을 개발했다. 1980년대 중반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국산 자동차 엔진을 개발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달려왔다. 1991년 알파엔진을 시작으로 중형차 엔진 라인업을 이끈 세타엔진, 대형 세단에 탑재된 람다/타운엔진을 선보였다. 2004년에는 친환경 차세대 세타 월드엔진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수많은 반대와 고난을 무릅쓰고 자동차 엔진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일으켜 세우며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우리나라를 기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기술을 수출하는 국가로 이끌기까지 부던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공학한림원 대상, 자동차공학 대상 등을 수상하고,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2008∼2011년까지 3년 연속 북미 ‘Ward’s 10 Best Engines‘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며 세계적인 권위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현순 과학기술유공자 인터뷰 바로가기 - YouTube]